외국 특허 한국 진입, 잘 썼다고 끝이 아니다
번역 작업이 완료됐다. 마감까지 여유도 있다. 그런데 이 번역문, 정말 안전한가?
PCT 경로로 한국에 진입하는 외국 특허에서, 번역문은 결코 단순한 텍스트 전환 작업이 아니다. 한국 특허법은 국어 번역문 제출을 보정 행위로 간주한다. 즉, 번역문을 제출하는 순간 출원인은 원문 명세서에 대해 법적 보정을 가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발생시킨다. 이 구조를 모르고 번역을 발주하거나 검토하면, 등록까지 도달해도 나중에 무효 심판의 표적이 된다.
이 글은 외국 특허의 한국 진입 과정에서 번역문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법적 위험으로 전환되는지를, 국내대리인과 번역 발주 실무자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짚는다.
기준일: 번역문에도 마감이 있고, 그 마감은 생각보다 빠르다
31개월의 함정
PCT 국제출원의 출원인은 우선일로부터 31개월(2년 7개월) 이내에 발명의 설명, 청구범위, 도면(설명 부분), 요약서의 국어 번역문을 한국 특허청에 제출해야 한다(특허법 제201조 제1항). 이 기간 내에 번역문이 제출되지 않으면 해당 국제특허출원은 취하된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까지는 많은 실무자가 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번역문 교체의 창은 더 일찍 닫힌다
번역문을 제출한 출원인은 국내서면제출기간 내에 새로운 번역문으로 교체할 수 있다. 그러나 심사청구를 한 이후에는 교체가 불가능하다(특허법 제201조 제3항). 실무에서는 출원인이 빠른 등록을 위해 번역문 제출과 동시에 심사청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번역문 오류를 발견해도 교체 창이 이미 닫혀 있다.
**기준일(基準日)**이라는 개념이 핵심이다. 기준일은 ① 국내서면제출기간 만료일(31개월)과 ② 심사청구일 중 빠른 날이다. 이 날짜가 지나면 번역문은 사실상 확정된다.
| 상황 | 번역문 교체 가능 여부 |
|---|---|
| 31개월 이내, 심사청구 전 | ✅ 가능 |
| 31개월 이내, 심사청구 후 | ❌ 불가 |
| 31개월 경과 후 | ❌ 불가 (취하 간주 또는 기간 도과) |
| 1개월 연장 신청 후 32개월 이내 | ✅ 가능 (단, 연장 신청 요건 충족 시) |
실무 포인트: 심사청구를 서두르는 출원인(또는 대리인)에게 반드시 번역문 검토 완료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번역 품질 확인 전 심사청구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원문주의 전환: 2015년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계다
번역문주의의 문제
2015년 1월 1일 이전 한국 특허법은 번역문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번역문이 제출되면 그 번역문을 기준으로 심사가 진행됐고, 오역이 있어도 출원인은 원문 내용을 근거로 보정할 수 없었다. 심사관도 원문과 번역문의 불일치를 거절이유로 삼을 수단이 없었다. 그 결과, 번역문에 오역이 담긴 채 등록된 특허가 이후 무효심판의 표적이 되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됐다.
2015년 개정: 원문주의 채택
개정 특허법(법률 제12753호, 2015.1.1. 시행)은 국제출원일에 제출된 원문 명세서를 최초 명세서로 간주하는 원문주의를 도입했다(특허법 제200조의2). 번역문 제출은 이제 보정 행위로 취급된다(제201조 제5항).
이 전환이 번역 실무에 가져온 핵심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구분 | 번역문주의 (2015년 이전) | 원문주의 (2015년 이후) |
|---|---|---|
| 최초 명세서 기준 | 번역문 | 원문 |
| 오역 발생 시 | 번역문이 확정, 원문으로 보정 불가 | 원문 범위 내에서 정정 가능 |
| 번역문 > 원문인 경우 | 무효심판 특례 적용 | 신규사항 추가로 거절이유 발생 |
| 분할·변경출원 기준 | 번역문 | 원문 |
번역문이 원문보다 '넓을 때'의 재앙
신규사항 추가의 작동 원리
원문주의 하에서 가장 중요한 실무 원칙이 있다: 번역문의 내용이 원문 명세서의 범위를 초과하면 안 된다.
번역문 제출은 보정으로 간주되므로, 번역문에 원문에 없는 내용이 포함되면 특허법 제47조 제2항의 신규사항 추가 금지 규정이 적용된다. 심사관이 이를 발견하면 거절이유로 통지되고, 해소하지 못하면 거절결정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KIPO 심사지침서가 명시하듯 실체심사는 번역문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번역문이 원문 범위를 초과했는지 여부가 심사 절차에서 직권으로 검토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데 있다. 번역문이 원문보다 넓은 채로 심사를 통과하면 특허는 그대로 등록되지만, 권리 안에 무효사유가 내장된 상태가 될 수 있다. 번역문 제출은 보정으로 간주되고(제201조 제5항), 원문 범위를 벗어난 보정은 제133조 제1항 제6호의 무효심판 청구 사유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결함은 등록 시점에는 드러나지 않고, 수년 뒤 침해 분쟁에서 상대방이 무효심판을 청구하는 순간 수면 위로 올라온다.
반대로 원문이 번역문보다 내용이 풍부한 경우, 이는 명세서 내용의 감축으로 적법한 보정 범위 내에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권리 손실이 발생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번역 오류 시나리오: Before / After
케이스 1 — 전환구 오역: comprising → 이루어진
원문 청구항 (영어):
A semiconductor device comprising:
a substrate;
a first electrode disposed on the substrate; and
a second electrode spaced apart from the first electrode.
잘못된 번역 (번역문):
[청구항 1]
반도체 소자로서,
기판;
상기 기판 위에 배치된 제1 전극; 및
상기 제1 전극으로부터 이격되어 배치된 제2 전극
으로 이루어진, 반도체 소자.
올바른 번역:
[청구항 1]
반도체 소자로서,
기판;
상기 기판 위에 배치된 제1 전극; 및
상기 제1 전극으로부터 이격되어 배치된 제2 전극
을 포함하는, 반도체 소자.
문제: "comprising"은 열거된 구성요소 외의 추가 요소를 배제하지 않는 개방형(open-ended) 전환구다. 이를 "이루어진"으로 번역하면 폐쇄형(closed-ended)이 되어 권리 범위가 대폭 축소된다. 이 경우 번역문이 원문보다 좁아지는 방향이므로 신규사항 추가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권리 범위 손실이 심각하다. 침해 제품에 제3의 구성요소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비침해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케이스 2 — 범위 확장 오역: 번역문이 원문보다 넓어진 경우
원문 명세서 (영어, 실시예 기재):
The reaction temperature ranges from 100°C to 150°C.
잘못된 번역 (번역문):
반응 온도는 100°C 내지 200°C 범위이다.
올바른 번역:
반응 온도는 100°C 내지 150°C 범위이다.
문제: 번역문에 "200°C"가 기재되어 원문에 없는 온도 범위가 추가됐다. 원문주의 하에서 이 번역문은 신규사항 추가 보정으로 간주된다. 심사관이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할 경우 거절이유를 통지받을 수 있고, 확정된 후라면 무효심판 사유가 된다. 숫자 하나가 등록 후 수년이 지나 권리를 흔든다.
케이스 3 — 도면 설명부분 번역 누락
원문 도면 설명 (영어):
FIG. 3 is a cross-sectional view showing the layered structure
of the semiconductor device according to the first embodiment.
번역 누락: 출원인이 도면 자체(그림)만 제출하고, 도면 중 설명 부분의 번역문을 누락했다.
문제: 특허법 제201조 제1항은 도면 중 설명 부분의 번역문 제출을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이 규정에 따라 설명 부분의 번역이 없으면 해당 내용은 처음부터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며, 특허법원 역시 이 원칙을 판결에서 재확인한 바 있다. 도면의 그림 부분(숫자, 선 등 비언어 요소)은 번역 대상이 아니지만, 도면에 포함된 텍스트 설명은 별도 번역이 필요하다. 이 구분을 놓치는 경우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다.
오역 정정: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기준일 이전이라면 번역문을 새 번역문으로 교체할 수 있다. 기준일 이후라면 "잘못된 번역"의 정정 절차를 밟을 수 있으나(특허법 제201조 제6항), 이 정정은 단순 오역 수정이 아니다.
정정의 요건:
- 보정 가능 기간 내에만 정정 가능
- 정정 내용은 반드시 원문 명세서 범위 내에 있어야 함
- 정정된 번역문은 보정으로 간주되지 않아 신규사항 추가 조항(제201조 제5항)을 적용받지 않지만, 정정 범위가 원문을 벗어나면 여전히 위법
다시 말해, 오역이라도 원문에 그 내용이 없다면 정정을 통해 삽입할 수 없다. "원래 의도가 그랬다"는 주장은 원문에 기재되지 않은 한 통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가 경계를 긋다
대법원 2014.4.30. 선고 2011후767 판결은 독일어 원문의 "ganz nach hinten(완전히 뒤로)"이 번역문에서 "오른쪽 뒤로"로 오역된 사안을 다뤘다. 법원은 해당 오역이 존재하더라도 그 오역으로 인해 관련 기술적 구성의 의미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무효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오역이 있어도 무효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출원인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실무적 함의는 반대다. 오역이 기술적 의미를 변경했는지 여부를 다투는 심판과 소송은 수년에 걸친 비용을 수반한다.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권리는 불안정 상태에 놓인다. "기술적 의미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기 위해 심판·소송을 치르는 것 자체가 이미 번역 실패의 결과다.
청구항 번역의 언어적 함정: 한국 진입 특화 주의사항
전환구의 개방성과 폐쇄성
한국 특허청(KIPO) 심사 실무에서 청구항 전환구의 번역은 엄격하게 해석된다.
| 원문 전환구 | 올바른 한국어 번역 | 권리 유형 |
|---|---|---|
| comprising | ~를 포함하는 | 개방형(open) |
| including | ~를 포함하는 | 개방형 |
| consisting of | ~로만 이루어진 | 폐쇄형(closed) |
| consisting essentially of | ~로 본질적으로 이루어진 | 준폐쇄형 |
| having | ~를 갖는, ~를 구비하는 | 개방형 |
| characterized by | ~를 특징으로 하는 | EPO식 표현 |
"consisting of"를 단순히 "구성된" 또는 "이루어진"으로만 번역하면 "comprising"의 번역어와 혼동이 발생한다. 한국어에서 폐쇄형 전환구를 표현할 때는 "~만으로 이루어진" 또는 "~로만 이루어진"처럼 배타성을 명시해야 한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침해 소송에서 권리 범위 판단 자체가 불분명해진다.
"상기"의 선행사 문제
한국어 특허 청구항에서 "상기(上記)"는 앞서 정의된 구성요소를 지시하는 표현이다. 번역문에서 "상기"가 지시하는 선행사가 불분명하거나, 종속항에서 독립항에 기재되지 않은 요소를 "상기"로 지칭하면 기재불비(특허법 제42조 제4항) 거절이유를 받는다.
예시 — 잘못된 종속항 번역:
[청구항 1] 제어 유닛을 포함하는 시스템.
[청구항 2] 제1항에 있어서, 상기 컨트롤러가 온도를 조정하는 시스템.
"컨트롤러"는 제1항에 등장하지 않았다. 번역 단계에서 "control unit"과 "controller"가 혼용된 결과다. 동일 개념에 두 가지 번역어가 사용되면 심사관은 이를 별개의 구성요소로 해석할 수 있다.
실무 체크리스트: 번역 발주 전·후에 확인할 것
번역 발주자(국내대리인, IP 매니저)가 번역 완료본을 검토할 때 다음 항목을 확인한다.
절차 측면
- 우선일 기준 31개월 마감일과 심사청구 예정일을 대조했는가?
- 심사청구 전에 번역문 최종 검토가 완료되는 순서인가?
- 도면 중 설명 부분(텍스트가 포함된 부분)의 번역이 모두 포함됐는가?
- PCT 제19조 보정(청구범위 보정)이 있는 경우, 보정된 청구범위의 번역문도 별도로 제출됐는가?
번역 품질 측면
- 모든 청구항의 전환구(comprising/consisting of 등)가 원문의 개방성·폐쇄성에 맞게 번역됐는가?
- 독립항에서 정의된 구성요소 명칭이 종속항 전체에서 일관되게 사용됐는가?
- 수치, 단위, 범위 표기가 원문과 일치하는가? (숫자 오타, 단위 혼용 여부)
- 번역문에 원문에 없는 내용이 추가되지 않았는가? (원문보다 넓은 번역)
- "상기" 표현이 선행사 없이 사용된 경우가 없는가?
법적 리스크 측면
- 원문 명세서와 번역문을 대조하여 수치·범위·물질명의 불일치가 없는가?
- 번역 과정에서 축약·생략된 구성요소 설명이 있는가?
- 외국 법인 발주의 경우, 원문 작성 국가(미국/일본/중국 등)별 청구항 관행이 한국 형식에 맞게 조정됐는가?
번역문은 출원의 끝이 아니라 권리의 시작이다
PCT 경로를 통해 한국 시장에 진입하는 외국 기업과 이를 대리하는 국내 실무자에게, 번역문은 행정 절차의 마지막 단계처럼 보이기 쉽다. 실제로는 반대다. 번역문이 확정되는 순간이 그 특허의 한국 내 권리 범위가 확정되는 순간이다.
2015년 원문주의 전환 이후, 번역문이 원문 범위를 초과하면 거절이유가 즉시 발동한다. 번역문이 원문보다 좁으면 권리가 조용히 축소된다. 오역 정정의 창은 심사청구와 함께 닫힌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번역 검토가 한국 진입 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Sentens Research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언어 전환을 넘는 법적 검토 관점의 번역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FAQ
Q: PCT 국제출원의 번역문 제출 마감은 정확히 언제인가요?
A: 한국 특허법 제201조 제1항에 따라 우선일로부터 31개월(2년 7개월)이 기본 마감입니다. 만료일 전 1개월부터 만료일까지 연장 신청을 하면 32개월까지 1개월 추가 연장이 가능합니다. 단, 이 연장은 반드시 번역문 제출 전에 신청해야 합니다. 번역문을 먼저 제출한 뒤에는 연장 신청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Q: 번역문 제출 후 오류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심사청구 전이고 기준일(국내서면제출기간 만료일 또는 심사청구일 중 빠른 날)이 지나지 않았다면, 번역문 전체를 새 번역문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기준일이 경과한 경우에는 보정 가능 기간 내에서 원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잘못된 번역의 정정' 절차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정정도 원문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Q: 번역문이 원문보다 내용이 넓으면 어떻게 되나요?
A: 2015년 이후 원문주의 하에서 번역문 제출은 보정 행위로 간주됩니다. 번역문이 원문 명세서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면 신규사항 추가(특허법 제47조 제2항)에 해당하여 거절이유가 통지됩니다. 심사 전에 발견되면 보정으로 해소할 수 있지만, 등록 이후라면 무효심판 청구 사유가 됩니다.
Q: "comprising"을 "이루어진"으로 번역해도 괜찮지 않나요?
A: 실무상 매우 위험한 번역입니다. "comprising"은 개방형 전환구로, 청구된 구성요소 외에 추가 요소가 있어도 침해가 성립합니다. 반면 "이루어진"은 "consisting of"에 해당하는 폐쇄형으로 해석될 수 있어 권리 범위가 크게 좁아집니다. 한국 실무에서 "comprising"의 표준 번역은 "~를 포함하는"입니다. 이 구분은 침해 소송의 판단 기준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Q: 도면에 포함된 텍스트도 별도로 번역해야 하나요?
A: 예, 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특허법 제201조는 도면 중 '설명 부분'의 번역문 제출을 명시적으로 요구합니다. 도면에 포함된 텍스트(예: "FIG. 3은 제1 실시예에 따른 단면도이다"와 같은 설명)는 번역 대상입니다. 반면 도면의 숫자 부호, 선, 그림 자체처럼 언어적 설명이 아닌 부분은 번역 대상이 아닙니다. 이 구분을 놓쳐 설명 부분 번역을 누락하면, 특허법 제201조의 규정에 따라 해당 내용은 처음부터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참고 자료
- 대한민국 특허법 제200조의2, 제201조, 제47조 제2항 (법률 제12753호, 2015.1.1. 시행)
- 특허법인 가산 (2016). PCT 원문과 번역문이 불일치하는 경우의 실무. kspat.com
- 대법원 2014.4.30. 선고 2011후767 판결 【등록무효(특)】
- 특허청 (2024). 특허·실용신안 심사지침서. KIPO.
- WIPO (2020). PCT 관련 자주 묻는 질문. WIPO. https://www.wipo.int/pct/ko/
- 특허청 PCT 국내단계 절차 안내. https://www.kipo.go.kr